레프티 그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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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프티 그로브는 1920년 마이너 리그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25년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에 입단하며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1941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300승을 기록했으며, 1947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는 9번의 평균자책점 1위, 7번의 탈삼진 1위를 기록했으며, 1931년 아메리칸 리그 MVP로 선정되었다. 1930년과 1931년에는 투수 삼관왕을 달성했고, 1931년에는 31승으로 근대 야구 좌완 투수 시즌 최다승 기록을 세웠다. 그의 고향인 로나코닝에는 레프티 그로브 기념관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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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티 그로브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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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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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 투수 |
타석 | 좌타 |
투구 | 좌투 |
출생일 | 1900년 3월 6일 |
출생지 | 미국, 메릴랜드주, 로나코닝 |
사망일 | 1975년 5월 22일 |
사망지 | 미국, 오하이오주, 노워크 |
데뷔 리그 | MLB |
데뷔일 | 1925년 4월 14일 |
데뷔 팀 |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
최종 리그 | MLB |
최종일 | 1941년 9월 28일 |
최종 팀 | 보스턴 레드삭스 |
신장 | 190.5 cm |
체중 | 86.2 kg |
선수 경력 | |
소속 팀 |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25 - 1933) 보스턴 레드삭스 (1934 - 1941) |
통계 | |
승패 기록 | 300승 141패 |
평균 자책점 | 3.06 |
탈삼진 | 2,266 |
MLB 스탯 | Baseball-Reference |
수상 및 업적 | |
올스타 선정 | 6회 (1933, 1935–1939) |
월드 시리즈 우승 | 2회 (1929, 1930) |
AL MVP | 1931년 |
트리플 크라운 | 2회 (1930년, 1931년) |
AL 다승 1위 | 4회 (1928년, 1930년, 1931년, 1933년) |
AL 평균자책점 1위 | 9회 (1926년, 1929–1932년, 1935년, 1936년, 1938년, 1939년) |
AL 탈삼진 1위 | 7회 (1925–1931년) |
명예의 전당 헌액 | 1947 |
득표율 | 76.4% (4번째 투표) |
야구 명예의 전당 유형 | 국가 |
관련 웹사이트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
기타 명예의 전당 | 필라델피아 야구 명예의 전당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명예의 전당 보스턴 레드삭스 명예의 전당 |
올-센추리 팀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센추리 팀 |
2. 유년 시절 및 마이너 리그 경력
''(본문 내용 없음 - 해당 섹션의 상세 내용은 하위 섹션 '유년 시절'과 '마이너 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2. 1. 유년 시절
그로브는 메릴랜드주, 로나코닝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존 로버트 그로브(1865–1957)와 엠마 캐서린 비먼(1872–1959)이며, 8명의 자녀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은 탄광에서 석탄을 캐는 일을 했다.[2]그로브는 1910년대 볼티모어 지역에서 샌드롯 야구의 스타 선수였다. 하지만 조직적인 야구를 시작한 것은 19세가 되어서였다. 그는 돌을 던지며 연습한 덕분에 강속구를 던질 수 있게 되었다고 전해진다.[3] 1920년, 그는 클래스 D 블루 리지 리그 소속 팀인 마틴스버그 마운티니어스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하여 6경기에 출전했다. 이 기간 동안 59 이닝을 던지면서 단 30개의 안타만을 내주었고, 평균 자책점(ERA)은 1.68을 기록했다.[4]
그의 뛰어난 실력은 잭 던 시니어(1872–1928)의 눈에 띄었다. 잭 던 시니어는 마이너 리그 팀인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감독이자 구단주였으며, 과거 베이브 루스를 발굴한 인물이기도 했다. 던은 마틴스버그 구장에 센터 필드 벽을 교체할 비용을 현금으로 지불하는 조건으로 그로브를 영입했다.[2]
2. 2. 마이너 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
그로브는 1920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입단했다. 당시 오리올스는 반세기 동안 마이너 리그에서 활동한 팀으로, 처음에는 구 이스턴 리그 (1903–1914) 소속이었고, 1916년부터는 AAA 야구로 개편된 인터내셔널 리그에서 활동했다. 그로브는 입단 첫 시즌 중반에 팀의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여 남은 시즌 동안 12승 2패의 기록을 세웠다.오리올스는 1919년부터 1925년까지 6년 연속 인터내셔널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강팀이었다. 그로브는 오리올스에서 5년간 재적하며 총 112승을 거두었고, 특히 마지막 4시즌 동안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며 매 시즌 인터내셔널 리그 삼진 1위를 차지했다.
연도 | 승 | 패 | 삼진 |
---|---|---|---|
1921 | 25 | 10 | 리그 1위 |
1922 | 18 | 8 | 리그 1위 |
1923 | 27 | 10 | 리그 1위 |
1924 | 26 | 6 | 리그 1위 |
1925년 메이저 리그에 데뷔한 그로브는 신인 시절 부상으로 10승 12패를 기록했는데, 이는 그의 17년 메이저 리그 경력 중 유일하게 패배가 더 많은 시즌이었다. 그는 리그 최다 탈삼진(116개)을 기록했지만, 평균자책점(ERA)은 4.75로 높았다. 1926년에는 2.51의 평균자책점으로 안정감을 찾으며 개인 통산 9번의 평균자책점 타이틀 중 첫 번째를 차지했다.[5] 1927년에는 처음으로 20승 고지에 올랐고, 1928년에는 조지 핍그라스와 함께 24승으로 아메리칸 리그(AL) 최다승 공동 1위를 기록했다.[7] 또한 데뷔 첫 해부터 7년 연속 리그 최다 탈삼진을 기록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그로브는 1924년까지 마이너 리그에 머물렀다. 당시 오리올스는 메이저 리그 구단과 제휴하지 않은 독립 구단이었고, 구단주 잭 던은 메이저 리그 구단들의 여러 영입 제안을 거절했다. 또한 인터내셔널 리그는 소속 선수가 메이저 리그 룰 5 드래프트 대상이 아니라고 선언했으며, 모든 계약에 포함된 보류 조항 때문에 오리올스가 그를 트레이드하거나 판매하지 않는 한 메이저 리그로 갈 수 없었다.[7]
잭 던은 그로브의 뛰어난 재능을 알고 있었기에 1925년까지 계약을 유지했다. 마침내 1925년, 코니 맥이 이끄는 아메리칸 리그의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에 그로브의 계약 권리를 판매하기로 합의했다. 이때 애슬레틱스가 지불한 이적료는 100600USD로, 당시 선수에게 지불된 최고 금액이었다.[7]
3. 메이저 리그 경력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는 그로브의 활약에 힘입어 1929년부터 1931년까지 3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 페넌트를 차지했고, 1929년과 1930년에는 월드 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이 시기 그로브는 리그 최고의 투수로서 각각 20승 6패, 28승 5패, 31승 4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1931년에는 승리(31승), 평균자책점(2.06), 탈삼진(175), 승률(.886), 완투(27), 완봉(4) 부문에서 리그 1위를 휩쓸었다. 그의 2.06 평균자책점은 리그 평균보다 2.32점이나 낮았다.[6]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931년 아메리칸 리그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의 MVP 상은 뉴욕주 쿠퍼스타운의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이 아닌, 메릴랜드주 로나코닝의 조지 크릭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애슬레틱스는 1932년과 1933년에도 우승 경쟁을 이어갔으나 각각 뉴욕 양키스에 밀려 2위, 워싱턴 세너터스와 양키스에 이어 3위에 머물렀다. 1933년 그로브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역사상 최초로 9이닝 경기에서 5번의 삼진을 당하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8] 1933년 12월 12일, 구단주 코니 맥은 재정난으로 인해 그로브, 맥스 비숍, 루브 왈버그를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했다. 레드삭스는 이들을 영입하는 대가로 밥 클라인, 래빗 워슬러와 현금 12.5만달러를 애슬레틱스에 지불했다.
1934년 보스턴 레드삭스 이적 첫 해에는 팔 부상으로 8승 8패에 그쳤으나, 1935년 20승 12패와 리그 1위 평균자책점(2.70)을 기록하며 부활했다. 이후에도 1936년(17승 12패, ERA 2.81), 1937년(17승 9패, ERA 3.07), 1938년(14승 4패, ERA 3.08), 1939년(15승 4패, ERA 2.54)까지 꾸준히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1935년부터 1939년까지 5년 동안 4번이나 아메리칸 리그 평균자책점 1위를 차지했다. 1940년에는 7승 6패, 평균자책점 3.99로 하락세를 보였고, 1941년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마지막 시즌 성적은 7승 7패였으며, 7월 25일에는 개인 통산 300승을 달성했지만(12피안타 6실점, 10-6 승리), 마지막 등판 3경기에서는 모두 패했다. 그의 마지막 등판은 9월 28일 더블헤더 2차전에서 1이닝을 던진 것이었다.
3. 1.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25-1933)
1925년,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는 당시 최고액인 100500USD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마이너 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5년간 112승을 거둔 그로브를 영입했다. 그 해 4월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으나, 신인 시절 부상에 시달리며 10승 12패를 기록했다. 이는 그의 17년 메이저 리그 경력 중 유일한 패전 기록으로 남았다. 리그 최다인 116개의 탈삼진을 기록했지만, 평균자책점(ERA)은 4.75로 높았다.
이듬해인 1926년 그로브는 안정을 되찾아 2.51의 평균자책점으로 9번의 평균자책점 타이틀 중 첫 번째를 획득했다.[5] 1927년에는 처음으로 20승을 거두었고, 1928년에는 조지 핍그라스와 함께 24승으로 아메리칸 리그(AL) 최다승 공동 1위에 올랐다.[7] 또한, 데뷔 첫 해부터 7년 연속 리그 최다 탈삼진 투수가 되는 신기록을 세웠다.
애슬레틱스는 1929년부터 1931년까지 3시즌 연속 아메리칸 리그 페넌트를 차지했으며, 1929년과 1930년에는 월드 시리즈 챔피언십을 연달아 제패했다. 이 시기 동안 그로브는 리그 최고의 투수로 활약하며 각각 20승 6패, 28승 5패, 31승 4패의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며 팀의 리그 3연패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1930년과 1931년에는 2년 연속으로 승리, 평균자책점, 탈삼진 부문에서 리그 1위를 차지하며 투수 삼관왕을 달성했다. 1930년에는 세이브와 승률에서도 1위를 기록하여, 투수 삼관왕과 세이브왕 동시 획득이라는 크리스티 매튜슨 이후의 쾌거였으며, 승률까지 포함하여 찰스 라드본 이후 투수 주요 5개 부문(투수 오관왕)을 제패했다.
1931년 시즌에는 승리(31승), 평균자책점(2.06), 탈삼진(175), 승률(.886), 완투(27), 완봉(4)에서 리그 1위를 휩쓸었다. 그의 2.06 평균자책점은 리그 평균보다 2.32점이나 낮았다.[6] 이러한 활약으로 1931년 리그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되어, 투수로서는 드물게 이 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그의 MVP 상은 뉴욕주 쿠퍼스타운의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이 아닌, 메릴랜드주 로나코닝의 조지 크릭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1931년 시즌 동안 그로브는 스모키 조 우드와 월터 존슨이 보유하고 있던 아메리칸 리그 기록인 16연승과 타이를 이루었다. 17연승에 도전하던 경기에서는 휴식을 취한 알 시몬스를 대신해 출전한 신인 외야수가 결승점으로 이어진 실책을 범하면서 연승 기록이 중단되었다. 그로브는 당시 상황에 대해 "그 경기 후 라커룸에 들어가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곳을 파괴했다. 벽에서 라커룸 선반을 뜯어내면서 알 시몬스에게 지옥을 보여줬다."[7]라고 회상했다. 그는 그 패배 이후 다시 8연승을 기록했다.[7]
당시 애슬레틱스의 강력한 야수진은 그로브의 성적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로브 자신도 "투수가 좋은 성적을 거두는 비결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몸 상태를 잘 유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깨가 강한 내야수와 발이 빠른 외야수를 갖추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팀 동료들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자세한 내용은 애슬레틱스 항목 참조)
1931년에는 미일 야구 대회 참가차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메이지 대학 소속이었던 마쓰키 겐지로(훗날 한신 타이거스 초대 주장)는 그의 저서 "타이거스의 탄생 - 한신 구단사"에서 그로브에 대해 "공이 포수 미트에 들어가고 나서 스윙하는 타자도 있을 정도였고, 빠른 공에는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있던 나도, 대결했던 처음 3타석은 삼진. 4타석째에 겨우 배트에 맞았지만, 3루 파울 플라이로 끝났다."라고 기록했다. 이때, "그로브 군, 던졌습니다. 아, 공이 빨라서 보이지 않습니다!"라는 유명한 실황 중계가 나왔다고 전해진다.
애슬레틱스는 이후 두 시즌(1932년, 1933년) 동안에도 우승 경쟁을 벌였으나, 1932년에는 뉴욕 양키스에 밀려 2위를, 1933년에는 워싱턴 세너터스와 양키스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1933년, 그로브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역사상 9이닝 경기에서 5번의 삼진을 당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8]
1933년 12월 12일, 구단주 코니 맥은 재정난으로 인해 그로브와 맥스 비숍, 루브 왈버그를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했다. 레드삭스는 이들을 영입하는 대가로 밥 클라인, 래빗 워슬러와 현금 12.5만달러를 애슬레틱스에 지불했다. 이 트레이드로 그로브의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시절은 막을 내렸다.
3. 2. 보스턴 레드삭스 (1934-1941)
1934년,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의 재정난으로 인해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이적 첫 해에는 팔 부상으로 인해 8승 8패를 기록하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1935년에는 20승 12패와 리그 1위인 2.7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1936년 시즌에도 17승 12패, 130탈삼진과 함께 2.81의 평균자책점으로 다시 한번 리그 1위에 오르며 개인 통산 7번째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차지했다. 이듬해인 1937년에는 17승 9패, 153탈삼진을 기록하며 8번째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 해 그가 던진 262이닝은 그의 선수 경력 중 11번째이자 마지막으로 200이닝 이상을 투구한 시즌이었다.
이후에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유지하여 1938년에는 14승 4패, 1939년에는 15승 4패를 기록했다. 특히 1935년부터 1939년까지 5년 동안 4번이나 아메리칸 리그 평균자책점 1위를 차지하는 뛰어난 기록을 세웠다. 레드삭스 소속으로는 총 4번의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획득했다.
1940년에는 7승 6패, 153.1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3.99, 62탈삼진을 기록하며 하락세를 보였다. 1941년은 그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시즌 성적은 7승 7패였으며, 7월 25일 경기에서는 12안타 6실점에도 불구하고 팀의 10-6 승리로 개인 통산 300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이후 마지막 메이저 리그 등판 3경기에서는 모두 패배했다. 9월 28일 더블헤더 2차전에서 1이닝만을 던진 것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4. 은퇴 이후
그로브는 1921년 어린 시절 친구였던 에델 가드너와 결혼하여 두 자녀, 로버트와 도리스를 두었다. 그러나 이후 그로브의 외도로 인해 부부는 이혼했다.[9]
은퇴 후, 그로브는 고향인 로나코닝에서 활동했다. 1950년대에는 시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시 경찰 서장을 지내기도 했다.[9] 선수 시절 비시즌 기간과 은퇴 후에는 로나코닝에서 볼링장을 운영했다. 또한 지역 사회에도 기여했다. MLB 경기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만난 길가의 야구팀과 인연을 맺고, 팀에 새 유니폼과 장비를 지원해주었다.[7] 은퇴 후에도 지역 청소년 야구 선수들에게 종종 장비를 기증했다.[10]
5. 개인사
그로브는 1921년 어린 시절 친구였던 에델 가드너와 결혼하여 두 자녀 로버트와 도리스를 두었다. 그러나 이후 그로브의 외도로 인해 부부는 이혼했다.[9]
1950년대에는 고향인 로나코닝 시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시 경찰서장을 지내기도 했다.[9] 선수 시절 비시즌 기간과 은퇴 후에는 로나코닝에서 볼링장을 운영했다. 또한, MLB 경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길가의 야구팀과 인연을 맺고, 팀에 새 유니폼과 장비를 사주기도 했다.[7] 은퇴 후에는 지역 청소년 야구 선수들에게 종종 장비를 기증했다.[10]
6. 업적 및 평가
그로브는 1941년 300승 141패의 통산 성적으로 은퇴했다. 그의 통산 승률 .680은 역대 8위에 해당하며,[11] 그보다 앞선 7명 중 236승 이상을 거둔 선수는 없다. 그의 통산 방어율 3.06은 리그 전체 방어율로 정규화되고, 그로브가 선수 생활 동안 활약했던 구장에 따라 조정되었을 때, 평균보다 48% 더 좋은 수치로, 최소 1,000 이닝을 던진 투수 중 역대 5위 (마리아노 리베라, 클레이튼 커쇼, 짐 데블린, 페드로 마르티네스에 이어)에 해당한다.[12]
타자로서 그로브는 .148의 타율 (1,369타수 202안타)을 기록했으며, 119 득점, 15 홈런, 121 타점, 105 볼넷을 기록했다. 1929년부터 1932년까지 그로브는 56타점을 올렸다. 수비에서는 .954의 수비율을 기록했다.[13]
그로브는 1947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는 1975년 5월 22일, 오하이오주 노워크에서 텔레비전으로 야구 경기를 시청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14] 그로브는 메릴랜드주 프로스트버그에 있는 프로스트버그 메모리얼 파크 묘지 9구역 94묘지에 안장되었다.[14]
1969년, 그로브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100주년 기념 팀의 좌완 선발 투수로 선정되었다.[15] 1999년, 그로브는 ''더 스포팅 뉴스''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야구 선수 목록에서 23위에 올랐다.[16] 그는 좌완 투수 중 워런 스판에 이어 2위에 랭크되었다. 같은 해, 그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센추리 팀에 선정되었다. 2001년 출간된 책 ''더 뉴 빌 제임스 히스토리컬 베이스볼 애브스트랙트''에서 빌 제임스는 그로브를 역대 19번째 최고의 야구 선수이자 역대 두 번째 최고의 메이저 리그 투수로 선정했다. 야구 역사가 프랭크 루소에 따르면, 그로브는 일반적으로 아메리칸 리그 역사상 최고의 좌완 투수로 여겨진다.[17] 루소는 또한 "리그 평균으로 정규화하고 홈 구장을 조정한 그의 3.06 방어율은 간단히 말해 야구 역사상 최고다."라고 적었다.[7]
1972년 오클랜드에서 열린 월드 시리즈 4차전에서 그로브는 시구자로 나섰다.
투수로서의 구종은 커브와 포크볼(커리어 후반)을 사용했다.
내용 | 횟수 및 연도 |
---|---|
다승왕 | 4회 (1928년, 1930년, 1931년, 1933년) |
최우수 방어율 | 9회 (1926년, 1929년 - 1932년, 1935년, 1936년, 1938년, 1939년) ※ 역대 1위 |
탈삼진왕 | 7회 (1925년 - 1931년) |
최다 세이브 | 1회 (1930년) |
아메리칸 리그 MVP | 1회 (1931년)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센추리 팀 선정 | 1999년 |
올스타 게임 출장 | 6회 (1933년, 1935년 - 1939년)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 | 1947년 |
필라델피아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 | 1980년 |
보스턴 레드삭스 명예의 전당 헌액 | 1995년 |
투수 삼관왕 | 2회 (1930년, 1931년) |
투수 전 타이틀 제패 | 1930년 |
투수 5관왕 | 1930년 |
1이닝 3타자 연속 삼진 | 여러 차례 달성[21] |
근대 야구(1901년 이후) 좌완 투수 MLB 시즌 최다승 | 31승 (1931년) |
월드 시리즈 출장 | 3회 (1929년 - 1931년) |
7. 기념 사업
레프티 그로브 기념 위원회는 그로브를 기리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 위원회는 그로브의 고향인 메릴랜드주 로너코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로브를 기리는 기념관은 2019년 6월 22일에 완공되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18]
8. 투구 스타일
레프티 그로브의 주무기는 당대 최고로 평가받는 강속구였다. 그의 공은 매우 빨라서 타자들이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1931년 미일 야구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당시 메이지 대학 선수였던 마쓰키 겐지로는 훗날 자신의 저서에서 "공이 포수 미트에 들어가고 나서 스윙하는 타자도 있을 정도였고, 빠른 공에는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있던 나도, 대결했던 처음 3타석은 삼진. 4타석째에 겨우 배트에 맞았지만, 3루 파울 플라이로 끝났다."라고 회고하며 그 위력을 증언했다. 이때 일본 중계에서는 "그로브 군, 던졌습니다. 아, 공이 빨라서 보이지 않습니다!"라는 유명한 실황 멘트가 나오기도 했다.
주된 구종은 강속구와 커브였으며, 커리어 후반에는 포크볼도 구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야구 서적인 '가이드 투 피처스(Guide to Pitchers)'에 따르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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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다시 출발선에 선' 류현진, 그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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